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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연쇄살인마 유영철 왜 살인을 시작했는가?

Gkeem
2021-01-27
조회수 462



희대의 연쇄 살인마

"유영철"



희대의 연쇄 살인마 유영철

그가 왜 살인을 저질렀으며,

또한 어떻게 경찰에게 검거되었는지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연쇄살인마 유영철

그는 누구인가?





이름:유영철

출생:1970년 04월 18일

출생지: 전라북도 고창군

신체: 170cm 65kg

혈액형: O형

가족: 3남 1녀 중 3남

자녀: 아들 1명

범죄유형: 연쇄살인

처벌: 사형




유영철은 

1970년 04월 18일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태어났습니다. 유영철의 유년시절 

가정은 찢어지게 가난했으며,

술을 마시면 폭력을 휘두르는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와

친모가 아닌 아버지가 외도로 

데려온 계모 밑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후 

유영철이 중학교 1학년 무렵 

아버지가 지병인 간질로

세상을 떠나자 

다시 형제들과 함께 친모와 합쳐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심리적인 안정감을 찾은 

유영철은 중학교 시절

다른 여느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성장했습니다.


평소 그림에 재능이 있던 점을 살려 

유영철은 예술 고등학교 진학을 시도했지만, 

떨어지게 되었고 그 뒤, 

크게 좌절했다고 합니다. 


이후 국제 공고에 진학하게 되었지만, 

끝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자퇴를 하고 말았습니다.


방황하던 유영철은 크고 작은 범죄를

저질러 소년원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출소 후 안마사인 황 모 씨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습니다.


하지만, 

결혼 이후에도 특수절도 및 성폭력 등의 

범죄를 일으켜 14년 동안 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수감 중 아내의 갑작스러운 

이혼 소송을 통해 유영철은 

이혼을 당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유영철은 가족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을 하며,

대인기피증과 여성 혐오증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유영철이 살인을 시도할 수 있는 

목적이 생긴 겁니다.



유영철의 첫 살인

신사동 고급 주택



2003년 09월에 전주 교도소를 출소한 

유영철은 이틀 뒤 

방범용 시설이나 CCTV가 없는 

지역을 몰색 하여 강남구 신사동 

거주하던 명예교수 부부를 둔기로 

살해함으로써

"서울 연쇄살인사건" 서막을 울립니다.


그리고 보름이 지난 뒤 유영철은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 거주하고 있는

80대 노모를 포함해 

일가족 3명을 살해했으며,

추가로 강남구에 거주하던 

50부부를 살해했습니다.



이후 언론사는 연쇄 사건이라는 

판단을 하고 보도를 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유영철은 살인을 저질른 후 

의도적으로 금고를 부수고 불을 지르기 

시작을 합니다.


이유는 언론사의 보도로 인해 

자신이 검거될 가능성 있다 

판단하여 경찰 수사망을 

혼잡 주기 위해서였던 겁니다.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표적 상대를 바꿔





부유층 상대로 살해를 저질렀던 

유영철은 경찰의 수사망이 점점 좁혀져 오자 

전화방이나 출장마사지사 같은 

성매매 여성을 중심적으로 

자신이 살던 원룸으로 유인해 

살해하는 방식으로 바꿉니다.


왜 성매매하는 여성들을 표적으로 삼았냐

하면 유흥 업종 여성들은 

대부분 실종이 되어도 

아무도 찾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유였습니다.




유영철 검거

왜 늦어 졌는지?



유영철은 감옥에 수감될 때부터 

살인 범행 계획을

치밀하게 세워 왔었습니다.


이에 유영철은 수감생활은 마친 후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면..

경찰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 항상 

장갑을 낀 채로 범행을 저질렀으며, 

체모나 정액과 같은 DNA를 알 수 있는 

요소를 전혀 남기지 않았습니다.


또한, 경찰이 시신을 구별하지 못하도록

토막살인과 지문을 도려 내기도 했습니다.


이로써 경찰의 검거가 

늦춰진 부분입니다.




성매매 업주와 경찰의 협조로

유영철은 검거




특정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고 나간 

여성 종업원들이 잇달아 돌아오지 않자 

몇몇 업주들이 회담을 했고, 

그 전화번호를 토대로 요주 인물을 

특정할 수 있었습니다.


유영철은 이 부분에서도 

혹시나 경찰에 꼬리가 밟힐까 걱정에

한번 이용한 업소의 번호는 

다시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각기 다른 성매매 업소

전화번호들이  결국에는 

한 업소로 모인다는 사실을 몰랐던

유영철은 업주의 신고로 경찰에게

검거가 되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경찰은 단순 범죄라 생각했었습니다.


조사 과정에서 유영철은 26명을

살해했다는 자백을 합니다.

하지만, 경찰 조사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살해한 희생자의 수는

20명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현장검증 과정에서 

경찰이 유영철에게 시신 중에서

내장이 몇 개가 없는 것에 대해 추궁하자

놀랍게도 그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먹었다"

"잡히지 않았으면 100명은 

더 죽였을 것이다"

"인육을 먹으면 정신이 

맑아진다"라는 발언을 해

많은 국민들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후 유영철은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대한민국 사형 폐지로 인해

감옥에 복역 중에 있습니다.


사건 이후로 대한민국은

더욱 다양하고 치밀한 범죄가

연이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진출처 - 그것이 알고 싶다.


[출처] 희대의 연쇄살인마 유영철 왜 살인을 시작했는가?|작성자 ladyguard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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